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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과 예술

김지수

슬픔과 예술

  우리는 때때로 슬프다. 단순히 일시적인 우울감 때문일 수도, 삶에서의 시련 혹은 사회적인 환경이나 사건으로 발생하는 구조적인 현상일 수도 있다. 어떤 연유이든 간에 살아가면서 어떤 비애감, 무력감, 불안 등을 비롯한 슬픈 감정의 순간은 피할 수 없다. 우리의 삶을 닮아 있는 예술 속에서도 슬픔을 표현한 작품은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15세기 미켈란젤로(Michelangelo)의 피에타상(Pietà像)을 비롯하여 슬픔은 아주 오래전부터 예술의 주제였다. 오늘날 가장 잘 알려진 작가로 손꼽히는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의 대표작인 <우는 여인>(1937)도 그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피카소는 스페인 내전으로 자식을 잃은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 해당 작품을 그렸다고 한다. 삶 속에서 겪은 비극이나 사회적인 슬픔의 단상을 작품에 담아낸 예술은 케테 콜비츠(Käthe Kollwitz)의 전쟁 연작  <어머니들> (1922-23)과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의 <아침 해> (Morning Sun,  1952)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와 같은 숱한 작품들은 삶과 예술이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슬픔을 예술 속에서 표현하는 것은 예술가들만의 일은 아니다. 예술 작품이 삶의 슬픔을 공유한다면 예술계는 그러한 예술이 대중과 더 널리 소통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든다. 동시대에서도 이러한 예시는 쉽게 찾을 수 있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의 발발로 일어난 전쟁의 비극은 실질적으로 전쟁 피난민들이 쏟아지는 동유럽뿐만 아니라, 더욱 멀리 떨어진 나라에서도 반전 시민운동이 일어나는 등 전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는 예술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지난 7월 21일, 파리의 카르티에 현대미술재단 (Fondation Cartier pour l’Art Contemporain)에서는 « Macabre Dance (죽음의 무도) » 라는 제목의 공연이 막을 올렸다. 이는 우크라이나 출신 연극배우인 블라드 트로이츠키(Vlad Troitskyi)를 감독으로 한 작품이었다. 감독과 마찬가지로 우크라이나 출신 배우인 테티아나 트로이츠카(Tetiana Troitska)와 우크라이나 음악그룹인 다흐 도터스(Dakh Daughters)가 출연하였으며, 이들은 고국의 비참한 현 사태를 주제로 퍼포먼스를 펼쳤다. 그들이 « Macabre Dance »에서 들려준 것은 마치 그들이 불꽃 속에 있는 것 같다는 절규와 같은 슬픔의 노래였지만, 오로지 슬프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예술 작품을 통해서 그들이 보여준 것은 비탄에 대한 증언이자, 가까운 이들에 대한 추모 그리고 저항이었다. 
 

 
« 내게는 말할 권리가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동시에 침묵할 권리 또한 없다고 느낀다. »

Macabre Dance 퍼포먼스 중
사진 출처| 카르티에 현대미술재단 유튜브
  
  슬픔에 온전히 침묵할 수조차 없는 애달픈 상황에서 예술은 그들의 평화에 대한 희망과 연대에 대한 간청의 목소리를 높일 수 있는 매개체 역할을 하였다. 이러한 예술가들의 목소리가 사회에 울릴 수 있도록 도운 것은 프랑스 문화부와 그 외 다수 기관의 지원이었다. 그리고 공연의 수익금은 프랑스-우크라이나 비영리 단체(Association France-Ukraine)에 기부되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관람객들은 공연이 끝난 후 공연 주최자 및 타 관람객들과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며 우크라이나 현 사태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으며 연대에 대한 의지와 희망을 나누었다. 작품을 만드는 예술가뿐만 아니라 전시나 예술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사람들과 그를 지지하는 기관, 이러한 예술작품을 보러 온 모든 사람이 함께 어떤 슬픔과 생각을 공유하는 과정을 통해서 비극이 단지 비극으로만 그치지 않을 수 있도록 소통과 교류의 장이 펼쳐진 것이다. 

  어떤 삶의 순간을 나누는 경험을 통하여 예술은 슬픔 앞에서 개개인의 존재를 하나로 묶고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게 하는 매개체가 되기도 한다. 예술이 그러한 구심점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자리를 남겨주자. 개별의 존재들이 각기 연대의식을 가지고 목소리를 높일 수 있도록, 또 그 목소리가 사회에 더 크게 들릴 수 있도록. 
참고 자료

김지수 sol.kim.021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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